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판타지를 여행하는 현대인을 위한 안내서/군사학 (문단 편집) === 정의로운 전쟁 이론, 외교 === 군사학을 논할 때 정치의 영향을 얼마나 논할지는 그 때 그 때에 따라 다르다. 보통 사소한 국지전 수준이라면 정치의 영향을 논할 필요는 없지만, 못해도 한 지방 이상의 점령전 혹은 국가의 존망을 걸고 싸우는 대규모 전쟁이라면 절대 군사에서 정치를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전쟁을 할 때는 어떤 상대와 싸울지, 상대와 싸운다 할지라도 어떤 수준으로 싸울지, 어떤 상대를 동맹군으로 끌어들일지를 논하는 것이 요구된다. 즉, '''정의로운 전쟁 이론'''을 좀 섭렵해 둘 필요가 있는데, 세속 학문 체계는 물론이고 '''신학''' 쪽에서도 의외로 많이 건드리는 부분이다. 먼저, ' '정의로운', '정당화된' 전쟁은 무엇인가?' 방어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아군이 침공을 나가는 상황이라면 이 명분을 그럴듯하게 뽑아내는 데에 나름 기발한 사고력을 필요로 한다. 또, ' '정의로운' 전쟁은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답이 나올 수 있다. 해당 질문들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하며, 구체적인 예시를 들자면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 * '''전쟁을 하기 전 철저히 명분을 따질 것.''' 물론, 반드시 도덕적으로 절대 선일 필요는 없고, 국제정치에서 다수의 국가 혹은 세력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고 적대국을 분열시킬 수 있을 정도의 명분[* 가령 상대국 군주가 찬탈자 또는 악의 축이라는 식.], 못해도 제3국 상당수를 적으로 돌리지 않을 정도, 하다못해 자국 국민들만큼은 수긍할 정도의 명분[* 가령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과 그에 참여한 한국 같은 나라는 욕을 먹었지만, 적어도 한국 국민들은 반공주의라는 명분 하에 베트남전 수행에 적극 참여했다.]이 요구된다. * '''정복전을 수행할 경우 가급적 철저히 민심을 얻어라.''' 방어전을 수행하는 경우라도 아국의 주요 지역의 민심은 얻어두는 것이 권장된다. 만일 전투 지역 주민들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 정복전을 수행할 경우, 현지 군사력이 우세하더라도 [[게릴라]]가 준동하여 그 지역에 상시 병력을 배치해야만 한다. 반대로 우리가 군사적으로 약하더라도 현지 민심이 우리를 따르면 최소한의 승산이 있다. [[국공내전]] 당시 하드웨어가 딸린 공산군이 국민당을 이긴 것 역시 [[삼대기율 팔항주의|결국은 민심의 지지 덕분이었다.]][* 공자도 이런 언급을 한다. 군사력<경제력<민심 이라고.] 구체적으로 살피자면, 평소 국민들이나 현지 주민들에게 식량, 의료, 의복을 평소에 혹은 점령지 위무 과정에서 잘 지원하거나, 좀 더 사회적으로 발전된 동네인 경우,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호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교적 발전 정도가 떨어졌다 할지라도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내지는 종교 등의 측면에서 충동적인 차원으로 선동을 하는 것도 좋다. 민심을 얻지 못하더라도 하다못해 지역 유력자[* 특히 조선시대 의병장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런 유력자들은 벼슬 등의 형태로 유혹하기도 쉽고, 명분 등의 측면에서 설득할 경우 넘어오기도 쉽다.]들을 포섭한다면 대충 비슷한 효과는 낼 수 있다. 다만, 민심을 활용하는 것 역시 어느 정도의 정규군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정규군적 기반이 없다면 공자 측 입장에서는 그냥 밀어버리고 상황을 종료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때로 전쟁을 벌이는 양국간 병사들의 증오심이 극에 달해 둘 중 하나는 사라져야 한다는 수준에 이른 경우, 이 때 타국에 쳐들어갔으면 반드시 적국의 현지 민심을 얻을 필요는 떨어진다. 총력전은 어떤 의미로 정치싸움과 비슷한데 정치싸움에서는 중간에 선 사람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전쟁에서 이기기 전에 아군에 의해 지휘관 목이 달아날 수 있다. * '''[[약탈]]은 군기 문란 및 자국 평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는 자제함이 타당하다.''' 약탈이란 본디 남의 것을 무력으로 빼앗는 것인 만큼 자제함이 타당하다. 그러나 동시에 약탈은 참전 병사들의 가장 큰 전쟁 보상이며, 전쟁에 나가서 한몫 단단히 벌어올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금지하는 것은 군기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수 양제는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약탈 금지령을 내렸지만, 막상 결정적인 때에 평양에서 먼저 도착한 수군이 약탈을 하다가 결사대 500명에게 각개격파를 당해 육군의 보급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것이 [[살수대첩]]으로 이어지는 큰 실패를 겪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몽골같은 유목 부족에 소속되어 있다면 경제적 이익 획득을 위해 약탈이 권장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사회적 관습에 따라 승자의 약탈이 어느 정도는 용인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 때는 사회적 관습 하에서 약탈을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약탈의 기간을 제한하거나, 몇몇 소수 집단이나 유력자, 문화인, 신전, 주요 건물 등의 약탈은 금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들을 회유할 여지를 부여하도록 하자. 특히 종교적인 동네의 경우 신전은 절대 건들면 안 된다. 종교를 건드리는 것만큼 어그로 끄는 소재는 드물다. 그리고 약탈에 따른 군기 문란을 막기 위해 약탈 방식 자체도 역시 어느 정도는 체계화할 필요가 있는데, 가령 몽골족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전에 특정 가옥에 화살을 꽃아 그 집만 약탈을 하도록 하는 방식이 좋다. 그리고 약탈품을 분배할 때, 계급 등에 따라 분배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고, 제3국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한 물질적 포섭을 위해 아즈텍 정복 당시 코르테스가 써먹은 것처럼 특정 지역의 약탈권을 보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 '''작전을 실행할 때 군주의 신임을 확보하고, 권력자들에게 작전에 대해 간섭받지 말아야 한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 역시 '장수가 군대를 이끌 때에는 아무리 군주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게 있는 법입니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며 왕이 아끼던 애첩 두 명을 처형한 바 있다.] 특정 작전을 실행하고자 할 때 군주의 신임을 우선적으로 확보하고, 전장에 있지도 않은 권력자들에게 작전에 대해 간섭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우주방어]]인데, 적의 기세가 강할 때 섵불리 공격해 피해를 보는 것을 피하고 방어하면서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일격에 몰아치는 방식은 확실히 이상적이지만, 언제 적의 기세가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다리다보니 군주의 의심을 사고 다른 권력자들의 모함을 받게 된 사례가 역사속에 비일비재했다. 왕전이 최대한 몸을 굽히고 보신에만 매달리는 것처럼 꾸며 진시황의 의심을 피한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다. 또한 점령지 주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해 바로 점령할 수 있음에도 시간을 끌어 스스로 항복하게 유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경우도 군주의 신뢰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악양]]이 그토록 시간을 끌면서 온갖 탄핵을 받으면서도 국왕의 신임 덕에 적국들을 무사히 흡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군주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며 [[왕전]]은 진시황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노후를 위한 땅만을 요구하기까지 하였다. 특히 왕전의 경우는 사실상 진나라 군대의 거의 대부분을 지휘하기에 충분히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이런 보신적인 행보덕에 우주방어로 일관하는 와중에도 의심 한번 받지 않고 한번의 전투로 승리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